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루노 발터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20세기 중반까지 넘기면서 90세에 육박하는 넘는 장수를 누렸던 인물이다. 그렇다 보니, 많은 음악가와 함께했다. [[예후디 메뉴인]]과 예전부터 녹음을 남겼고, 그 외에도 상당하다. * 여러 지휘자들과 친분도 대단했다. 특히 자신보다 9살 연상인 [[아르투로 토스카니니]]는 동료이자 서로 호형호제하며 조언을 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었다. [[파일:0f10329979b4b39b211a928d6c514a66.jpg]] * 오토 클렘페러와는 말러의 제자로써 [[천인 교향곡]]의 초연에도 스승의 제자로써 함께했었다. 그 외에도 프랑스 출신이지만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맡았던 샤를 뮌슈나 역시 프랑스 출신인 피에르 몽퇴와의 친분도 있었다.[* 샤를 뮌슈는 [[보불전쟁]] 이후 프랑스가 상실한 땅인 [[알자스-로렌]] 지방 출신 독일인으로 나중에 프랑스로 땅이 반환된 시절 프랑스로 귀화했다. 원래 이름은 카를 뮌흐(Karl Münch).] * 젊었을 적에는 교향곡 2곡[* 1907년에 작곡된 교향곡 1번은 발터가 살아있는 동안 딱 2번(1909년, 1911년)만 연주되었으며, 그것도 모두 발터 자신이 지휘한 연주들이었다고 한다. 1910년에 작곡된 교향곡 2번은 아예 연주된 기록조차 없다.]과 여러 곡의 실내악들을 쓰는 등 작곡가로도 나름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, [[구스타프 말러]]의 [[교향곡 제9번(말러)|교향곡 제9번]]을 초연을 한 후로는 더 이상 작곡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. || [youtube(Ml1vBmfgVrI)] || 브루노 발터의 교향곡 1번 d단조.[* 이 녹음 속의 연주를 지휘한 지휘자 레오 보츠타인은 2004년에 뉴욕에서 이 곡을 93년 만에 공개 연주했으며, 2007년에는 음반(영상 속 음원)으로 내기까지 했다.] 발터가 말러 앞에서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을 때, 말러는 아내인 [[알마 말러]]에게 "아무래도 발터는 지휘자로서의 활동에 집중해야 할 것이며 이에 당신도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."라는 은근히 제자를 깔보는(...)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.[* 아이러니하게도 말러 본인조차 생전에는 지휘자로 유명했지, 작곡가로서는 입지가 충분하지 못했다.] [[분류:독일의 지휘자]][[분류:1876년 출생]][[분류:1962년 사망]][[분류:베를린 출신 인물]][[분류:유대인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